사를 바라보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의무입니다!

2001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후소샤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역사인식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고 역사인식의 문제를 연구의 영역이 아닌 시민운동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장본인(?)이 바로 후소샤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운동이 한일, 한중일 시민연대로 확장되면서 정부차원에서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역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1년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을 0.039% 거의 제로 퍼센트로 무력화시켰다는 것 역시 시민운동의 ‘힘’을 보여준 중요한 쾌거였다. 이러한 한중일 시민연합운동의 ‘힘’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정부가 아닌 풀뿌리 시민운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001년도의 핵심적인 활동은 한국민들에게 일본 교과서 왜곡의 실상을 알리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동참을 호소하고,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잘못된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는 일이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며,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한일 양국 시민단체들의 연대활동은 운동본부(현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활동의 기조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일본 교과서 개악을 규탄하기 위한 범 아시아행동의날과 한일공동시위가 개최됐다. 한국에서는 교과서 개악에 항의하기 위한 사이버시위로 인해 일본 문부과학성, 산케이신문, 후쇼사 등 일본의 대표적인 기관의 홈페이지가 마비됐다. 6월에는 교과서 관련 아시아연대집회에 참여했고, 동시에 73개국 125개 도시에서 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세계행동의 날’을 개최하기도 했다. 일본 동경에서 약 500여명이 문부과학성에서 ‘인간띠잇기’ 행사를 진행하였으며, 서울과 부산 등에서 약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진행했다. 또한 10월 15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방한을 반대하는 전국민 규탄대회를 진행한 바 있다.


또한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전 국민적 동참을 위해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초기 서명운동이 일본 교과서 왜곡의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통과가 확정된 이후, 잘못된 교과서의 채택을 거부하는 불채택요구가 서명운동의 중심이 됐다. 이러한 서명운동은 운동본부가 주관하여 1만 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교총 등 관련단체 등이 참여하여 총 35만 명의 서명을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 이러한 서명운동의 성과는 일본 신문에 한국민의 의견을 싣기 위한 광고운동으로 결실을 맺었다. 운동본부는 무관심한 일본 언론들로 인해 일본의 교과서 왜곡의 진상을 알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일본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기 위한 의견광고 싣기 운동을 전대해 약 2600만원의 성금을 모아 9월과 10월에 걸쳐 일본의 아사히신문과 한국의 문화신문에 의견광고를 실었다.

아시아역사연대 활동의 또 다른 한 축은 출판 및 학술, 홍보활동이다. 제 1차 심포지엄은 일본교과서 왜곡문제를 중심으로, 제 2차 심포지엄은 한국교과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학술 심포지엄의 주제는 향후 교과서 운동의 방향과도 맞물리는 것으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뿐 아니라 한국 교과서의 내용이나 형식도 점차 바뀌어야 한다는 단체활동의 향후 목적이 내재돼 있다. 이뿐 아니라 출판활동에도 힘을 쏟아 타와라 요시후미의 저술 ‘위험한 교과서’를 번역. 출판 했으며, 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편저로 ‘문답으로 읽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을 출판해서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을 일반인이 읽기 쉽게 펴냈다.


<1> 민관정 네트워크

2005년 교과서운동의 기본 축은 한일자매결연도시를 중심으로 한국 내 지역시민단체와 지방자치제(구의회/시의회/시교육위원회), 그리고 국회의원을 엮는 민-관-정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됐다. 민-관-정 네트워크의 필요성은 일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필요했는데, 교과서운동을 각 지역으로 확산하기 위해서 각 지역단체들의 참여가 필수적이었고, 각 지역단체들은 역사왜곡저지라는 대의만으로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과 자매결연돼 있는 지자체들과 연계를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엮어내기 위해 6월 국제 심포지엄에 참여한 일본의 각 지역 활동가들이 한국의 자매결연 도시의 지자체와 시민단체를 방문하는 것을 기획했다.


민-관-정 네트워크는 이후 사업에도 중요한 근간이 되었는데, 일본 각 지역교육위원회에 불채택요청서 보내기 운동, 일본캠페인에도 자매결연 도시의 시민단체와 지자체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중에서도 서초구(스기나미구)와 동대문구(도시마구), 안양시(사이타마현)의 경우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시의원이 일본을 직접 방문하는 등 보다 강화된 연대활동을 진행했다.


<2> 일본캠페인

일본캠페인은 요청행동과 심포지엄이 중심이다. 지역교육위원회를 방문해 후소샤 교과서 채택이 한일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고, 한일의 시민단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일간의 평화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한중일이 공동으로 집필한 ‘미래는 여는 역사’ 일본어를 각 교육위원회마다 기증하였는데, 이것은 시민단체들이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동아시아 역사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일본캠페인은 집중적으로 역량을 투입한 만큼 성과도 컸다. 가장 큰 성과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일본 언론들을 움직이는데 일본캠페인단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인구가 작은 지역일수록 한국의 방일단의 활동이 지역 언론의 보도거리가 됐고, 이것을 계기로 교과서문제를 다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방일캠페인단의 지역교육위원회의 방문 자체가 해당 교육위원회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또 다른 성과는 일본 캠페인을 통해 한일 시민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이 긴밀해졌다는 점이다. 이미 여러 번에 걸친 만남과 일본 현지 캠페인을 통한 활동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과 교과서문제에 대한 깊은 동지애를 느끼게 된 것이다.


<3> 국내캠페인

2005년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리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을사조약 100주년, 해방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이 중첩된 상황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한일문제를 중심주제로 다루고 있는 단체들은 각기 다양한 영역 속에서 활동해왔다. 그런 점에서 대일관련 단체들이 중심이 돼 교과서 운동을 이끌어 갔던 2001년과는 달리 2005년 교과서 운동은 중심주체들이 일반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구성, 진행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주로 국내캠페인은 일본 역사왜곡 관련 전시회를 중심으로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총 11개 광역도시, 24개 지역에서 7월과 8월에 걸쳐 진행됐다. 참여하는 단체들이 통일연대나 청년단체들이 중심이 됐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독도문제와 역사왜곡 문제로 각 지역의 관심이 예상보다 높았고, 중앙에서 모든 전시물과 홍보물을 지원하는 형식은 각 지역에서 큰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였기 때문이다. 국내캠페인은 일본 역사왜곡을 널리 알리기 위한 대중교육적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4> 국제캠페인

국제캠페인은 원래 유엔 코피아난 사무총장이 전 세계 NGO들에게 갈등예방을 위한 국제 활동을 제안하면서 GPPAC(Global Partnership for the Prevention Against Armed Conflict) 동북아위원회에 차여하면서 기획됐다. 동북아에서 갈등은 무력갈등 뿐만이 아니라 역사 갈등이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주요한 의제로 대두됐기 때문에, 동북위지역위원회의 의제 중 하나로 일본 역사왜곡을 설정했다.

2005년 7월 뉴욕 유엔에서 GPPAC 세계대회가 열리게 됐고, 이 기간을 전후로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게 된 것이다. 우선, GPPAC 기간 내에 일본 역사갈등의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해 워크숍 “역사 갈등과 평화교육”을 피스보트와 교과서운동본부가 공동주최했다. 역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한중일이 협력한 ‘미래를 여는 역사’ 모델이 GPPAC이 주창하고 있는 GO와 NGO의 협력모델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뉴욕 콜롬비아대학 한국한연구소의 도움을 얻어 세계 각국의 학자들을 초청해 일본 역사왜곡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외에도 비슷한 기간에 개최되는 재미한인학교협의회 총회에서 동북아정세포럼을 넣어서 현재 역사 갈등을 주요테마로 설정해 특강과 강의를 했다.

국제캠페인은 주로 일본 역사왜곡 문제를 국제적인 지평으로 넓혔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일본 역사왜곡 문제는 한일문제로 한정되는 것에서 탈피하여 이 문제를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하는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우선 활동범위가 국내에 한정돼 있는 것에서 벗어나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접근하는 방식면에서도 일본 역사왜곡이 ks국과 일본 두 나라의 과거사문제가 아닌, 국제사회의 갈들이라는 측면에서 넓게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과 함께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은 좁게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넓게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는 문제인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의견광고

일본의 교과서 채택이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는 7월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초로 아타와라시에서 후소샤 교과서가 채택이 되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독도문제와 교과서문제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초기 상황과는 달리 특별한 이슈가 생기지 않는 교과서 문제에 문관심해지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아는 일본 신문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의견광고로 드러났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반일시위를 예를 들면서 한국과 중국 국민들이 반일감정에 사로잡혀있는 것으로 왜곡보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반일’ 이 아니라 ‘평화’와 ‘공생’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신문 의견광고를 위해 한국민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모금운동이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지원해준 여러 단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견광고의 제1차 목적은 일본 신문에 한국민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해 일본국민들을 설득시키는데 있었다. 따라서 의견광고 문안 역시 일본국민들을 움직일 수 있는 편안하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만들었다. 의견광고가 게재되면서부터 일본의 시민단체, 시민들로부터 격려와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외롭게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시민들의 의견광고를 보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뻤다고 말한다. 의견광고는 일본 역사왜곡 저지와 후소샤 교과서 채택반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목표를 달성했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한국민의 관심을 결집시키고, 일본 역사왜곡 등 역사문제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국제적으로는 일본 각 지역에 영향력 있는 신문을 통해 지역여론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됐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활동하는데 도움을 얻었다는 점이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교과서운동본부) 2001 활동보고서』,
『4년의 활동, 한일 시민의 승리 - 2005년 교과서운동 백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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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시아역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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